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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10 아버지에 대한 두가지 시선
얼마전 지인으로부터의 책 선물과 그 즈음에 산 책의 제목이 모두 아버지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왔다. 하나는 김애란이라는 80년대 생인 여성 작가가 쓴 단편 소설을 모아놓은 '달려라, 아비'이고, 다른 하나는 이병동이라는 40대의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가 생전에 적어놓은 일기장의 내용을 블로그 형태로 쓴 것을 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물론, '달려라, 아비'는 책 제목의 단편 소설 뿐만 아니라, 다른 제목의 단편 소설도 실려있으며 개인적인 느낌은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의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세상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들은 문득 아버지가 된다'라는 책의 내용은 50년대에서 시작하여 70년대 후반까지 저자의 어린 시절을 포함한 우리네 시골의 모습을 아버지의 일기장을 통해서 볼 수 있으며, 그 시절에 왕성하게 활동한 우리 아버지들의 생각과 마음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달려라, 아비'에 실려있는 단편들은 주인공이 여자이든 남자이든 김애란만의 독특한 형태의 글쓰기라는 것이 느낄 만큼 그 내용이 새로왔다. 사실 난 '달려라, 아비'라는 소설을 읽고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린다기보다 (40대의 남자의 입장) 주인공의 시각으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에 빠져들어갔다. 이는 마치 어느 한 곳의 시선에서 다른 시선(혹은 특정 시각에서 1분 간의 흐르는 시간으로 이동하는 동안)으로 이동하는 그 짧고 찰나의 순간에 그렇게 많고 다양한 생각과 느낌들이 주인공의 혹은 인물의 (나는 이러한 것이 저자의 생각과 느낌이 그대로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머리 속에 남아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놀라왔다. 이는 마치 지금의 젊은 세대(2, 30대)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 방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호흠과 단편의 모습만으로 다양한 언어와 표현으로 무겁지만 결코 무겁지만은 않게, 또한 광활하지만 그렇다고 산만하지 않게 글로 만든다는 시각이 새로웠다.

'달려라, 아비'의 내용은 아버지를 모르고 태어난 택시운전을 하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소녀가 아버지를 상상의 나래 속에서 표현한 것으로, 결말 부분에서는 미국의 또 다른 형제로부터 받은 아버지의 사망 편지에서 전 세계를 달려온 (주인공은 아버지가 알지 못하는 목적으로 달리고 있다고 상상한다.) 아버지가 이제 미국에서 그 쉼없이 달려온 시간을 멈추고 비로소 쉴 수 있다는 안도감으로 끝낸다. 하지만, 주인공인 딸은 엄마에게 아버지에게서 듣지도 못한 '엄마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을 거짓으로 편지에 쓰여있다고 한다. (편지는 영어로 쓰여져 있었다)

이 단편 소설 뿐만 아니라, 이 책에 실린 다른 소설 역시 주인공의 가정 형편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며, 어찌 보면 지금의 88만원 세대를 반영하듯이 참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그 삶에 대해 나름대로의 상상과 희망을 가지고, 혼자서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다. 아니, 보는 이에게는 참으로 힘들 것 같다고 생각들게 만들지만, 이들은 정작 자신에 대해 연민보다는 이를 풍부한 상상력으로 결코 힘들지 않게, 그리고 삶을 그리 단순하지 않게 만들고 있다. 이 책은 보면 볼수록 알고 싶은 젊은 세대들의 상상력에 궁금증을 더해주게 만든다.

40대의 가장이 자신의 아버지의 40, 50대를 엿볼 수 있다면 이처럼 색다른 경험이 없을 것이다. 지금 40대의 가장이 느끼는 부담감을 우리 아버지 스스로도 느꼈을 것이고, 지금의 경제나 환경을 탓하듯이 똑같이 우리네 아버지도 그 당시의 경제나 환경을 탓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의 40, 50대에 그 자식으로 살면서 이러한 것을 느끼면서 혹은 눈치채면서 자란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그저 우리를 탓하고 야단치시는 아버지가 원망할 뿐이었고,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한 인상이 서운했을 것이다.

이 책, '우리들은 문득 아버지가 된다'를 읽고 나서, 정말 사소한 것까지 기록하신 저자의 아버지가 내 아버지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이제 내가 저자의 나이만큼 먹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저자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유였을까. 자식에게 엄하셨고, 호통을 치시는 장면이 마음 한구석에는 늘 자신의 능력 부족의 미안함과 못남의 자책감이 자리잡는 글귀에서 지금의 내 자식의 아버지로서의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아니, 오히려 그 시절의 아버지들은 모두 다가 그랬듯이 자식에게 풍족하게 주지 못했음을 그리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될 것이다. 그 시절은 모두 다가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 시절의 아버지들은 자신들을 탓하면서 자식에게 미안해하셨다. 하지만, 지금의 풍족한 환경에서도 나는 자식에게 그 시절의 아버지들만큼 자식에게 미안하거나 자책하는 마음이 오히려 더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나 자신에 너무 놀란다. 이전과 같이 대식구가 아닌 핵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마음 씀씀이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깨닫는다. 저자의 아버지는 자식들이 장성하여 자리잡는 것을 못보고 돌아가신다. 오히려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이 책을 쓰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40대의 가장으로 우리네 아버지를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하며, 그 시절의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닌 나와 동급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게 하기 때문에 더욱 아버지가 다가온다.

두 권의 서로 다른 형태의 아버지에 관한 책은 아버지와 나, 아버지 위치의 나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새로운 생각을 갖게 만든다. 첫번째 책이 아버지 위치의 나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서 조망하는 책이라면, 두번째 책은 아버지와 그 아들인 가장으로써 나의 관계에 대해서 조망할 수 있는 책이었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늘 달려가기만 하는 아비이지만, 아버지 입장에서는 세월이 지나 가장으로써 아들이 자신의 위치에 놓이게 될 때 갖는 심정은 죽는 순간까지 걱정으로 가득찰 것이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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